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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를 합니다

가족이 죽을 때, 남은 가족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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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N_doodle

 

 

친구에게 급한 전화가 왔다.

암으로 투병 중이셨던 아버지에게 호흡곤란이 와서 의사인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친구는 아버지를 응급실로 모시고 갔고 병원에서는 인공호흡기를 달지 말지 가족들에게 결정하라고 했다고 한다.

 

친구의 아버지는 늘 집에서 죽고 싶다고 했지만 막상 상황이 나빠지니 그럴 수 없었다.

돌아가시게 방치하는 것 같아서였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소생하실 가망이 있다면 그냥 돌아가시게 두는 건 안 되지 않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며칠간 인공호흡기를 달고도 결국 돌아가실 가능성이 훨씬 높다.

더 큰 문제는 기약 없이 호흡기를 달 수도 있다는 것이다.

 

 

ⓒ SON_doodle

 

 

며칠 전 사망한 환자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호흡곤란으로 힘들어하던 환자는 그냥 죽고 싶다고 했지만 인공호흡기를 달았고, 그 상태로 2주를 버티다 사망했다.

 

인공호흡기를 달 때 환자가 너무 괴로워해서 진정제를 들이부어 강제로 재워야 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친구 아버지의 경우, 호흡기를 달아도 며칠 안에 사망한다.

가족들이 바라는며칠간 호흡기를 달고 회복하는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친구는 인공호흡기를 달기로 결정했다. 

친구와 가족들은 도떼기시장 같은 응급실에서 밤을 샜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지켜보아야 하는 가족들의 심신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 SON_doodle

 

 

응급실은 삶의 막바지에 있는 환자들을 위한 곳이 아니다.

중환자실로 옮기는 것이 좋을 텐데 이것도 쉽지 않다.

중환자실은 고령 환자들로 인해 자리가 없다.

 

며칠 후 혈액 투석을 결정해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인공호흡기를 해도 얼마 못 버티는 순간이 온 것이다.

아버지의 모니터를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다.

 

“내 생각에는 투석을 하신다 해도 오래 못 버티실 것 같아.”

 

결국 친구의 아버지는 투석을 시작했고 3일 후에 돌아가셨다.

내과계 중환자실은 자리가 없어 옮기지 못하고 응급실에서 임종을 맞았다.

 

중요한 순간, 환자에 대한 치료 결정을 고지한 의사는 환자가 한번도 본 적 없는 응급실 담당 의사였다.

 

 

ⓒ SON_doodle

 

 

9년 동안 레이노 병을 앓던 최 씨가 마지막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는 믿기 힘들 정도로 산소포화도가 낮았다.

 

중환자실로 이송한 후 바로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그날 밤, 힘겹게 생명을 뿜어 올리던 환자의 심장이 마침내 멈췄다.

 

자동적으로 심폐소생술이 시작되었는데 첫번째 심폐소생술로 맥박이 돌아왔다.

비극은 여기서부터였다.

 

환자의 심장이 멈추는 순간 자동적으로 시행되는 심폐소생술은 잠깐 환자의 상태를 되돌릴 수는 있지만, 생존과는 거리가 멀다.

 

 

ⓒ SON_doodle

 

1시간이 지나 두번째 심정지가 왔다.

그날 밤 환자는 네 번의 심정지가 왔고, 네 번의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빠른 속도로 강하게 흉부를 압박하다보면 갈비뼈가 부러지는 것은 다반사이고 복부 장기가 파열되기도 한다.

 심폐소생술은 5시간 넘게 이루어졌고, 그녀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새벽 4시에 숨을 거두었다.

 

나는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보다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처참하게 죽었다는 것이 너무나 애통했다.

 환자를 살리는 것도 의사의 책임이지만, 환자가 편하게 생을 마칠 수 있게 돕는 것도 의사의 책임이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함께 죽을 사람도 살려내는 것 같은 착시 효과가 생기면서 노화에 의한 자연사가 무색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죽음은 점점 더 부자연스러운 사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되어가고 자연사는 때로 안락사, 살인과 혼동되기까지 한다.

병원에서는, 시간을 끄는 것이 환자에게 고통스러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죽음을 늦추려는 시도를 한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리는 분위기 때문에 정말 사망의 순간이 왔을 때에야 허둥지둥하며 결국 갈 수 있는 곳이 응급실밖에 없다.

  

ⓒ SON_doodle

 

이미 선진국들에서는 이런 불행한 결과를 막기 위해 완화 의료를 중심으로 하는 죽음의 질 향상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죽음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종교, 문화, 사회적 요인을 비롯해 너무나 많은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이 정상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 죽음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참고 도서: 죽음을 배우는 시간』, 김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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