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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를 합니다

남자친구와 2년째 집 없이 차에 사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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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봄,

나는 그와 함께 작고 귀여운 밴으로 이사했다.

길이 4m, 2m, 높이 2m

2평 남짓의 작은 승합차가 우리 집이다.

 

ⓒ LIKEDOJI

 

“요리 배우러 프랑스 갈래요.”

 

9년 전, 내 몸뚱이만 한 가방을 질질 끌고

프랑스의 한 기숙사에 선 나는 다짐했다.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가야지.

 

그 후 눈물의 1년을 보냈다.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옷 한 벌 사 입을 때도 계산기를 두드렸다.

 

ⓒ LIKEDOJI

 

그러던 중 남자친구를 만났다.

진심으로 나를 이끌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내게 브레이크를 건 사람도 그였다.

 

지옥 같았던 유학 생활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나만 빼고 다 행복해라며 우울했던 내가

이제는내가 제일 행복해라며 웃고 있었다.

 

ⓒ LIKEDOJI

 

하지만 행복은 파리의 살인적인 물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외식비가 두려워 사람들 만나기를 꺼렸고

데이트라곤 공원이나 강변에서 걷는 게 전부였다.

 

젊고 가난한 우리는 월급이 적든 근무 시간이 많든

꾸역꾸역 결혼 자금과 집 살 돈을 마련해야 했다.

고민하다가 울고, 의논하다가 싸우는 나날이 이어졌다.

 

ⓒ LIKEDOJI

그러던 어느 날,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 야구선수는 소형 밴을 집 삼아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밴 라이프를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밴 라이프? 그게 뭐지?’

 

밴 라이프라는 단어를 여기저기에서 찾아보았다.

 

도시에서 직장에 다니며 밴에서 생활하는 이들, 

디지털 노마드로 일도 하고 여행도 하며 사는 이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작은 밴에서 살고 있었다. 

 

‘캠핑카라면 모를까, 욕실이나 주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작은 밴에서 어떻게 살아?’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행복해 보이던

그들의 얼굴이 자꾸만 머릿속을 둥실둥실 떠다녔다.

 

 

도시에서는 밴을 세워두고 출근하며 지낼 곳이 없을 텐데

 

중고 밴을 사면 초기 비용도 얼마 들지 않을 테고,

더 이상 집세와 공과금도 낼 필요가 없을 텐데

일을 그만둘 수 있지 않을까?

 

 

밴을 정말로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잠자고 밥 먹고 쉴 수 있으면 집이 아닐까?

이참에 여행을 다니면 좋잖아?

작은 밴이면 유류비도 덜 들고 이동하기도 편할 테고.

 

 

욕실도 없는데 씻는 건 어떻게 씻지?

 

여름엔 바깥에서 자유롭게 씻을 수 있고

겨울엔 유료 샤워 시설을 이용하던데, 충분하지 않을까?

 

 

따지고 보니 걱정했던 불편함은 사실 너무나도 사소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왜 집은 커야 하고 많은 물건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의심해보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원래 그런 거니까.

 

ⓒ LIKEDOJI

이제 그에게 이야기를 꺼낼 차례였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조금 더 생각해보자.

밴 라이프는 너무나도 일시적인 삶이 될 거야.”

 

 

혼자서 너무 멀리 와버린 걸까 싶어 밤새 우울했다.

복잡한 머리를 붙들고 일을 하는데 진동이 울렸다.

 


밤새 생각해봤는데,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일시적일지 평생일지는 살아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잖아?
우리도 현재를 즐기면서 살아보자.
해보자, 밴 라이프.

 

ⓒ 하지희

 

700만 원짜리 중고 밴을 사서

몇 달간의 긴 공사를 끝내고

드디어 우리 집을 갖게 됐다.

 

‘이 작은 밴이 정말 집이 될 수 있구나.’

 

ⓒ LIKEDOJI

그렇게 좁은 데서 어떻게 살아?”

 

2평 남짓한 밴에서 산다고 하면 

모두 감탄과 걱정을 한다.

 

밴의 크기는 2평이지만 문을 여는 순간

우리 집의 크기는 10평일 수도, 1000평일 수도 있다.

하루만 빌려 쓰고 떠나도 되는 마당이 펼쳐지는 것이다.

 

매일 바뀌는 창밖의 풍경은 작다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

햇살이 들어오는 모양과 빛깔이 다르고,

새어 들어오는 소리와 향기도 다르다.

 

ⓒ LIKEDOJI

 

한참을 이동하다 적당한 장소를 찾아 멈춰 서면

우리 등 뒤에는 새로운 집이 기다리고 있다.

 

“덴마크 바다도 멋지다. 오늘 우리 집은 해변 리조트네.”

 

“독일에도 숲이 많아서 좋다. 숲 속 산장 분위기야.”

 

“오늘은 언덕 위라 그런지 바람 때문에 집이 엄청나게 흔들리네.”

 

 

오늘도 밴과 함께 느리게 이사한다.

내일 우리는 어떤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참고 도서 : 하지희, 『가끔 여행하고 매일 이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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