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트는 새벽, 거리는 고요했다.
분주한 사람들 몇 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한 명은 운전을 했고, 두 명은 쓰레기를 차에 던졌다.
차는 한 골목에 정차했다.
쓰레기를 싣고 후진해야 하는 골목이었다.
두 명은 쓰레기를 집어 실은 뒤
차를 때려 다 되었다는 사인을 보냈다.
트럭이 후진할 때, 둘은 난간을 밟고 걸터 서 있었다.
그때, 한 명의 신발이 미끄러졌고
중심을 잃어버렸고, 곧 꼬꾸라졌다.
눈앞에 자신에게 돌진하는 트럭 바퀴가 보였다.
새벽 시간, 응급실은 조용해진 참이었다.
지금부터 가장 한가한 시간이었다.
그 새벽, 카트 하나가 도착했다.
누가 봐도 청소부였다.
그에게 다가가자 대원이 말했다.
“청소차에 다쳤대요. 많이 다친 것 같습니다.”
“어디가 아파요?”
“배가, 으으으. 배가.”
나는 그의 형광색 옷을 걷었다.
볼록 나온 배에 타이어 자국이 사선으로 그어져 있었다.
뇌신경에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아저씨, 차가 타고 넘어갔어요?”
“네…… 으.”
바퀴가 마지막으로 어깨에서 주저앉은 것 같았다.
타이어가 지나간 자리의 갈비뼈는 다 깨져 있었고,
장기 손상으로 배는 상당히 부풀어 있었다.
“외상 처치, 전부 준비해주세요.
수액, 혈액, 흉관, 라인, 폴리, 초음파, 엑스레이, 하여간 전부.
전부 준비합니다.”
나는 그의 배를 어루만지며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매일같이 가쁜 잠에서 깨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에게
물을 죄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그를 살리고 싶었다.
“아저씨. 버텨요, 아저씨.”
“아파요. 내가 발을 헛디뎠어요. 내 잘못이에요.
내가 잘못해서, 잘못이라고.”
그 육중한 쓰레기차에 깔려놓고 잘못했다고,
이럴 수가 있는 걸까?
왜 세상의 어떤 선량한 사람들은
죽기 전까지 선량한가.
그래서 누가 트럭으로 밟아도 탓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저씨. 잘못 안 했어요.
살면 잘못하는 거 아니에요.”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모니터에 맥박이 46으로 빨갛게 번쩍거렸다.
아래 수축기 혈압이 62였다.
나는 다시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망 직전의 얼굴이었다.
다시 모니터를 보았다.
맥박이……
나는 그의 목을 짚었다. 맥이 없었다.
우리는 모두 결과를 알고 있었고,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누가 찾아왔어요.”
“보호자래요?”
“아니요. 가해자라는데요.”
바깥에는 같은 형광색 옷을 입은 사내가 있었다.
그는 잠시 열린 집중치료실 문틈으로 뛰어들어갔다.
“야야아. 이 새끼야, 살아야지. 살아야 돼.”
그는 환자 옆으로 뛰어가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는 환자의 뺨을 쳐댔다.
나는 그를 바깥으로 인도했다.
“조금만 있다가 면회시켜드리겠습니다.”
그는 어깨를 뿌리치고 의료진 사이에 쓰러져
바닥에 엎드려 신음했다.
확정적이었던 죽음이 찾아왔다.
나는 처치실에서 그의 마지막 서류를 채우며
이 사망자용 차트가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했다.
방금 자신이 치우던 쓰레기 무더기에 깔려 죽은
인생 하나가 또 지나간 것이었다.
바깥으로 나가자, 그의 동료가 거기 서 있었다.
정신이 온전한 듯 온전하지 않아 보였다.
“트럭으로 가장 친한 친구를 밟으면 어떤 느낌인지 알겠습니까?
나는 친구와 같이 죽고 싶습니다.
이 발이라도 잘라내고 싶습니다.”
“사망자 분이 마지막까지 저와 대화를 했습니다.
잘못했다고 했습니다.
그게 마지막 남긴 말씀이셨습니다.”
그는 주먹을 쥐고 벽을 힘차게 내려쳤다.
“마지막까지 자기 잘못이라고……
내가 죽였는데. 잘못했다고?”
곧 아침이 밝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24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붐비는 아침 거리에 나왔다.
사람들이 활기차게 출근하고 있었다.
거리는 깔끔했고 쓰레기는 잘 치워져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의사 한 사람의 인생은 백 사람의 인생과 마찬가지다.
그걸 견뎌내지 못하면 의사가 될 수 없다.”
나는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매일같이 바꾸어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매일 견뎌내고 있는 것 같았다.
참고 도서 : 『제법 안온한 날들』, 남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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