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n번방 사건’ 관련 청원에
무려 500만 명의 국민이 뜻을 모은 덕분에
범인의 신상이 공개되고 정부는 양형 기준 강화를 약속했다.
청원으로 결집된 국민의 뜻이 법과 제도를 바꾸기도 했다.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뜨거운 여론이
일명 ‘윤창호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 음주운전으로 인명 피해를 낸 운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음주운전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개정안
국민들은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게 어렵지 않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경험을 갖게 됐다
세상에,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2017년 5월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만나자고 했을 때,
솔직히 적당히 거절하고 돌아올 참이었다.
“제가 거길 왜...”
기자를 그만두고 포털사이트 회사로 옮긴 지 9년째,
그해 초 나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제 꽃길이 열리나 싶은 상황이었다.
그는 청와대가 뉴미디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할 것이라는 구상을 들려줬다.
완전히 새로운 ‘직접 소통’을 해보자고 했다.
거짓말처럼 마음이 흔들렸다.
한 달 뒤, 나는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산하
뉴미디어비서관*으로 일하게 되었다.
*현재 뉴미디어비서관실은 디지털소통센터로 변경되었다.
뉴미디어비서관실의 첫 프로젝트는
청와대 홈페이지를 ‘국민소통플랫폼’으로
새단장하는 것이었다.
"국민들이 직접 플랫폼에 와서 떠들 수 있어야 해요."
"어떻게 만들면 국민들이 놀러 올까?"
모든 동료들이 격렬한 토론을 벌였고,
이 논의 속에서 국민청원이 모양을 갖춰갔다.
#1. 인증은 쉽게
미국 백악관의 청원사이트 ‘위더피플’과
영국 청원의 동의 서명 방식은 무척 간단하다.
백악관 청원은 이름과 이메일만 넣으면 가능하다.
영국 청원은 이메일 외에 우편번호를 추가로 요구한다.
글을 쓰게 만드는 데 가장 높은 장벽이 ‘인증’이다.
청와대 국민소통플랫폼을 성공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결심한 게 실명 인증을 걷어내는 것이었다.
국민청원이 소셜로그인 때문에
중복 서명 가능성이 있다는 일각의 지적이 있는데,
20만 명은 몇십, 몇백 명이 애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소셜로그인의 장점은 그 외에도 많다.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기에 유출 가능성이 없고,
게시물을 올렸다가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실명제보다는 이메일로 동의를 받아도
어떻게 하면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2. 청원을 게임처럼
게임은 한 단계를 돌파해야 그다음 세상이 열린다.
그 한 고비를 넘어서기 위해 사람들은 전력을 다한다.
청원도 게임처럼 목표가 명확해야 했다.
청원에는 몇만 명 이상 동의라는 기준이 있다.
미국은 10만 명, 핀란드는 5만 명이다.
10만 명은 우리 온라인 문화에서
어렵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높게 잡으면 실패할 게 분명했다.
고심 끝에 청원 답변 기준은 20만 명으로 결정됐다.
20만 명을 넘는 청원은 생각보다 많았고,
정부는 약 2년 동안 106개의 청원에 답을 했다.
#3. 답변은 확실하게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 어떤 일을 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내가 하는 일이 효과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
20만 명 동의를 얻은 청원에 대해서는
최고 책임자의 책임 있는 답변이 나오도록 설계했다.
그리고 반드시 ‘영상으로’ 답을 해야 한다고 정했다.
서면으로 하면 사무관이 정리한 답변에
장관이 결재만 할 게 분명했다.
아니, 장관까지 결재가 안 올라갈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라이브로 하든, 녹화로 하든
반드시 최고 책임자가 출연해야 한다.
장관이 신경 쓰는 일은 부처에서 움직이는 게 다르다.
청원해봐야 별 소용없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법을 바꾸고, 제도를 개선하는 노력에
국민이 직접, 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효능감을 준다고 믿는다.
그리고 투명하고 열린 소통은
우리의 미래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것이다.
*참고 도서: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 , 정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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