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럽지 않은 삶이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뇌과학을 전공했고,
전미정신질환자협회(NAMI) 위원이었으며,
30대 중반의 나는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꺼번에 추락하고 말았다.
장밋빛 삶과 전도유망한 미래가 날아가 버렸다.
어느 날 일어나 보니 내가 뇌졸중에 걸린 것이다.
1996년 12월 10일 아침 7시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순간 왼쪽 눈 뒤를 누가 찌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고통은 점점 심해져서화끈거릴 정도였다.
운동을 하면 피가 돌아 괜찮아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음악을 틀고 러닝머신에 올라갔다.
곧바로 몸이 분리되는 것 같은 희한한 감각이 밀어닥쳤다.
의식은 명료했지만 몸이 제대로 듣지 않았다.
팔이 저절로 앞뒤로 흔들렸다.
‘일을 하러 가야지. 어떻게 출근하지? 내가 운전은 할 줄 알았나?’
그때 갑자기 오른쪽 팔이 마비가 되어 풀썩 떨어졌다.
그 순간 알았다.
‘맙소사, 뇌졸중이야! 내가 뇌졸중에 걸렸어!’
그리고 다음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우와, 이거 멋진데!’
자신의 뇌 기능이 무너지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진 뇌과학자가 얼마나 될까?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이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네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것을 다 기억해!
인지능력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 제대로 살펴보는 거야.’
곧 극심한 피로가 몰려들었다.
‘아, 피곤해. 너무 피곤해서 잠깐만 누워서 쉬고 싶어.’
하지만 머릿속 또 다른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누워서 쉬면 영원히 일어날 수 없어!’
당장 온 힘을 다해 도움을 청해야 했다.
하지만 도움을 청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한 순간은 또렷하게 생각했다가
다음 순간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9-1-1 이라는 코드를 인식하는 뉴런들이
피 웅덩이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좌뇌의 언어 능력과 계산 능력이 내게서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회사 전화번호가 뭐였더라?’
몇 분 동안 생각한 끝에 마침내 숫자 4개가 불현듯 떠올랐다.
2405! 2405! 나는 머릿속으로 계속 반복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힘이 떨어진 왼손으로 펜을 들어,
재빨리 종이에 적었다.
숫자 2는 갈겨쓴 곡선에 가까웠다.
‘나머지 숫자가 어떻게 되지?‘
머릿속에 휙휙 지나가는 생각 중 855가 갑자기 떠올랐다.
누구에게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생각하는 데만도
45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도 동료 스티브가 전화를 받았다.
그의 말이 들렸지만 나의 뇌는 그의 말을 해석하지 못했다.
‘맙소사, 목소리가 꼭 골든레트리버처럼 들리잖아!’
“나는 질이야! 도와줘!”
이렇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으르렁대는 신음 소리에 가까웠다.
“으흐흐흐, 으흐 흐흐, 크으으으, 크으으으..”
언어를 만들어내는 왼쪽 전두엽 세포까지 손상된 것 같았다.
출혈이 계속 되어 세포 조직의 손상이 심해졌고
인지력이 갈수록 희미해졌다.
몸을 작게 움츠린 나는
점점 정신이 죽음에 굴복하는 것을 느꼈다.
참고 도서: 질 볼트 테일러,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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