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플라스틱 냉장고 문을 열어
플라스틱 물병을 꺼내 물을 마시고,
플라스틱 칫솔로 양치를 하고 플라스틱 변기에 앉는다.
플라스틱 속옷 위에 플라스틱 옷을 입는다.
스마트폰과 플라스틱 이어폰,
플라스틱 카드를 챙겨 집을 나선다.
인류는 석기 시대와 철기 시대를 거쳐
바야흐로 플라스틱 시대에 도착했다.
플라스틱의 발견은 ‘당구공’에서 시작했다.
기원전 400년경 그리스에서 시작된 당구는
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완벽한 귀족 스포츠였다.
16세기부터 코끼리 상아로 당구공을 만들었는데
상아 당구공은 곧 당구의 필수 요소가 된다.
하지만 미국에 당구가 도입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업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대중적 확산이었다.
하지만 상아 당구공은 비싸고 칠수록 모양이 변했다.
결국 뉴욕의 한 당구 물품 회사가 신문에 광고를 낸다.
당구공을 만들 새로운 물질을 가져오면
1만 달러를 주겠음!
발명가 존 하야트도 공고를 보고 당구공 개발에 뛰어들었다.
개발 도중 부상을 당한 존 하야트는 약이 든 서랍을 열었는데
약병이 쓰러져서 내용물이 쏟아져 있었다.
그 때 쏟아진 약이 눈에 들어왔다.
약은 굳어서 단단한 판이 되어 있었다.
그 약은 질산섬유소를 알코올에 용해한 ‘콜로디온’이었다.
이 약이 쏟아지고 알코올이 날아가며
딱딱한 판을 형성한 것이다.
거기서 영감을 받은 그는 질산섬유소와 장뇌*를 혼합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최초의 플라스틱이다.
*장뇌 :녹나무를 증류 냉각시킨 결정체
플라스틱은 저렴하고 변형이 자유로워 다용도로 활용된다.
형태뿐 아니라 색깔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어서
패션계와 제조업계에서 환영 받았다.
플라스틱은 자본주의 정신과 딱 맞아 떨어졌다.
자본주의에서는 화려하지만 저렴해야 하며,
넘치게 생산하고 금세 바뀌지만 변하지 않아야 한다.
플라스틱 덕분에 인류는 풍족한 삶을 영위하게 됐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재앙을 함께 불러온다.
바로 플라스틱으로 인한 심각한 환경 오염이다.
심지어 한국은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 세계 1위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에게 제대로 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플라스틱은 썩는데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썩는 중에도 온갖 환경호르몬과
유해 물질(테프론, 비스페놀A, 스티렌다이머 등)을 배출한다.
대표적인 문제로 떠오르는 것이 미세 플라스틱이다.
미세 플라스틱이 바다에 떠다니면,
해양 동물이 이를 플랑크톤으로 착각해 삼켜버린다.
플라스틱은 동물의 체내에 그대로 쌓이고
상위 포식자로 갈수록 점점 더 많이 쌓인다.
결국 사람의 몸에 쌓여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는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미세 플라스틱 알갱이 2,000개,
신용카드 한 개 분량을 섭취한다.
안타깝게도 플라스틱의 재활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새로 찍어내는 게 오히려 더 저렴할 뿐 아니라
재활용된 플라스틱은 품질이 좋지 않아 사용도 제한적이다.
유일한 현실적 대안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이지만,
인류는 결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안락을 포기하지 않는다.
당장 부엌에 랩이나 비닐팩이 없다고 생각해보라.
에코백에 텀블러를 넣고 다니는 사람도
포장재 없이 택배가 배송되면 광분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반성하지 않는다.
물이 더러워지면 생수를 팔고,
공기가 더러워지면 공기 청정기를 팔면 그만이다.
인류가 망하든 지속하든 플라스틱과 함께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상상 속에는 인류가 멸망한 뒤 남은
총 천연색 플라스틱 세상이 그려진다.
참고 도서: 오후,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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