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정신과 의사다.
예전엔 ‘정신 분열병’이라 불리던
만성 조현병 환자들의 치료를 맡고 있다.
대부분 ‘정신과’라 하면 음산한 병동과
어딘가 기괴해 보이는 환자를 떠올리지만,
사실 사람들이 상상하는 풍경과는 굉장히 다르다.
대부분의 정신과 질환은 호전이 가능하다.
조현병도 대부분 약물 치료로 증상이 잘 조절되며,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며 지내는 사람도 있다.
만성 질환인 조현병은 의사와 환자가 협력해
관리하고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한번 환자와 맺은 인연이 오래 갈 수밖에 없다.
수정 씨는 지적 장애에 동반된
정신병적 증상이 있는 환자였다.
약간의 환청이 있었고, 지나친 공격성을 보였다.
수정 씨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다가 돌아가셨고,
결혼해서 제 식구가 생긴 형제자매들은
늙고 병든 아버지를 보살피기도 벅찼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수정 씨의 아버지와 언니는 병원을 찾았다.
수정 씨는 입원을 했고, 내 환자가 됐다.
수정 씨의 지능은 다섯 살 정도였다.
그녀는 먹는 것에 집착했고,
한번 화가 나면 병원 기물을 마구잡이로 부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약의 효력이 좋았는지,
간호사와 복지사들의 노력에 마음을 열었는지
점차 수정 씨의 공격성은 줄어들었다.
그 다음에 내가 할 일은, 다시 수정 씨가
사회로 돌아갈 수 있게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
병원에선 잘 적응했지만 집이나 시설로 돌아가면
돌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가족과 함께 반나절 정도의 외출을 시도해봤다.
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잘 돌아왔다.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1박 2일 외박을 나가본다.
역시 성공적이었다.
삼겹살을 먹고 왔다며 수정 씨는 자랑했다.
다음엔 일주일 외박을 시행했고, 돌아온 다음날
나와 수정 씨는 면담실에 마주 앉았다.
“좋았나 봐요.”
“네, 아주 좋았어요.”
“뭐가 그렇게 좋았어요?”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아빠랑 에버랜드도 갔었어요.”
“잘했어요. 또 집에 외박 가고 싶어요?”
“네, 또 가고 싶어요.”
“왜 또 가고 싶어요?”
내가 예상한 답은
‘삼겹살 먹고 싶어서요’ 정도였다.
그런데 수정 씨의 입에선 의외의,
하지만 듣고 나니 조금은 뭉클해지는 대답이 나왔다.
“집에는 우리 아빠가 있으니까요.”
주변에서 ‘딸 바보’ 아빠들을 자주 본다.
주위에서 바보라고 구박을 해도,
정말 바보처럼 헤헤 웃으며 좋아한다.
아들만 키우는 나는 가끔 그 모습에 심술이 난다.
하지만 인정한다.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집에는 우리 아빠가 있으니까요”라는 말을,
제삼자인 내가 들어도 눈물이 핑 도는 저 말을,
내가 낳은 딸이 오종종한 눈으로 하는 걸 들으면,
어찌 바보가 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참고 도서: 『우리는 비 온 뒤를 걷는다』, 이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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