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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를 합니다

결혼 2년,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편에게 아내가 한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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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su

하율이 유치원에서 가족사진을 가져오라고 했다.

아이와 나 둘만 찍은 사진을 가져가면

친구들이 아빠는 어디 있는지 물어보겠지.

 

아이가 ‘아빠는 돌아가셨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주눅들진 않을까.

 

© Susu

그래서 아이가 할머니와 찍은 사진을 고르고

남편 살아 있을 때 찍은 사진도 골랐다.

 

하율이가 두 살 때 그이는 신장암 수술을 했다.

그리고 네 살 때 숨을 멈췄다.

하율이가 아빠와 같이한 시간은 3년 4개월 12일.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어

세 식구가 같이 나온 사진은 드물다.

그중 속초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있다.

 

© Susu

그이가 2차 항암치료를 시작한 늦여름이었다.

나는 바다에 가고 싶다고 그이를 졸랐다.

 

결혼하자마자 임신하고 아이를 낳고

그는 신장암을 수술하고…….

갑자기 많은 일이 생겨 여행은 꿈도 못 꿨다.

 

그때도 바다에 갈 형편은 안 됐지만

매일 그가 죽을지 살지 걱정하기보다

지금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 Susu

바다를 처음 본 아이는 눈이 동그래졌다.

무섭다며 내 손을 잡고

파도에 발을 넣었다 뺐다 장난했다.

 

그이는 흐뭇하고 편안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몇 년 만에 느끼는 일상적인 행복이었다.

 

셋째 날, 워터파크에 갔다.

아이는 물을 좋아했고, 그도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두 시간 만에

그이 컨디션이 갑자기 나빠졌다.

 

© Susu

‘이마저 쉽지 않구나.’

 

나는 실망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우리는 워터파크에서 나와 숙소로 갔다.

 

다음날 다행히 그이의 컨디션이 좋아져

속초 동명항에 가서 구경을 하고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부탁해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이 바다를 배경으로

처음 우리 셋이 찍힌 사진이다.

 

© Susu

얼마 후, 남편은 왼쪽 눈이 안 보인다고 했다.

2, 3일 만에 상태가 나빠지면서

그는 완전히 앞을 볼 수 없게 돼버렸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했던 사람이다.

그에게 본다는 것은 세상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의 거의 전부였다.

 

© Susu

반년 동안 일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어도

그는 나를 보며 이야기했고 하율이를 보며 웃었다.

 

의사는 나와 시어머니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남편은 초점 없는 눈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빠를 보고 놀란 아이는 내 뒤로 숨었다.

 

“하율아, 아빠한테 인사하자.

아빠는 이제 가실 거야.”

 

© Susu

아이가 뽀뽀를 하자 그이는 비명을 멈췄다.

 

“하율아…….”

 

미소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은 게

그의 마지막 손길이었다.

 

그의 장례식을 치르고 주말이면 아이와 놀러 갔다.

그가 아팠던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 가고 싶었다.

이제 사진 속에는 아이랑 나, 둘이다.

 

지나간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거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사라지고 있다.

 

© Susu

반복되는 일상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한순간을 기억에 남기고 싶다면,

그만큼 특별한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

 

허무하게 사라지는 시간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그뿐이다.

잡고 싶은 특별한 순간은

나 혼자일 때가 아니라 우리일 때다.


* 참고 도서: 『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 김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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