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은 사람의 집을 청소하는 특수청소부다.
쓰던 물건부터, 핏자국과 마지막 냄새까지,
한 사람의 생전 흔적을 완전히 없애는 일을 한다.
어느 날,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막 해가 저물 무렵, 전화가 걸려 왔다.
부동산 중개인은 자살한 젊은 여성의
원룸을 맡기고 싶다며 조심스레 말을 덧붙인다.
“좀 특이한 점이 있는데, 가보시면 알게 될 테지만...
아무튼 잘 부탁드려요.”
원룸으로 가 중개인이 알려준 대로 번호를 누르자
명쾌한 잠금 해제 신호음이 울렸다.
소리를 죽인 채 큰 숨을 한 번 들이쉬고는
손잡이를 비틀고 집에 들어섰다.
세탁용 섬유유연제의 라벤더향과
사람이 부패하며 만들어낸 것이 뒤엉켜
불쾌하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코에 스며들었다.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전등을 켰을 때
눈앞에 펼쳐진 예상 밖의 광경에,
곤두섰던 신경이 놀라움이라는 감정 뒤로 밀려났다.
자살 현장에서 뜻밖에 마주한 캠핑장.
연분홍색 텐트가 방 한가운데 둥그렇게 세워져 있다.
입구에는 소주병 예닐곱 개가 놓여 있고,
텐트 안에 두꺼운 에어매트가 팽팽하게 부풀어 있다.
누가 봐도 이곳은 잠시 머물고자 꾸린 거처이다.
주변엔 티브이도, 화장대도 없다.
베란다에는 이사용 노란색 박스 다섯 개가
납작하게 접혀서 세워져 있다.
그녀의 모든 살림은 이 상자에 고스란히 담겨
고시원에서 원룸으로 전전해 왔을 것이다.
텐트와 화장실 입구 사이의 장판 바닥에
혈액이 말라붙어 있다.
조심스레 엎드려 바닥을 닦아낸다.
가방 속에서 이력서가 발견되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 휴대전화 부품 공장에서 일했다.
이년 뒤면 서른이 될 나이다.
단색 배경에 표정 없는 증명사진,
한 반에 꼭 한 명은 있을 것 같은 흔한 이름.
여백을 많이 남긴 이력서는
그녀가 짓는 풍부한 표정과, 좋아하는 음식과,
오랫동안 따라 부른 노래를 담아내지 못한다.
텐트 뒤에서 책 몇 권을 발견했다.
모두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위한 책이다.
텐트 안 램프에 불을 밝히고 문장들을 읽어나가며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누군가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 주었다면
스스로 삶을 저버리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나는 동료가 알아채지 못하게 눈물을 훔치고
책들을 서둘러 자루에 쏟아부었다.
오늘 이마저 사라지고
완전히 텅비워질 이곳에도
어김없이 찾아올 밤과 어둠이 야속하다.
참고 도서: 『죽은 자의 집 청소』, 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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