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할머니는 돌체라떼를 좋아해
할머니는 손녀들이 나갈 때마다 어딜 가냐고 물었다.
대부분 “카페 갔다 올게”가 우리의 대답이었다.
그럴 때면 카페는 왜 그렇게 자주 가냐며 궁금해했다.
5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러 매일 나간다니.
그뿐인가? 집에 올 때도 사 오는 걸 보면
커피에 중독된 게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루는 동생이 할머니 드린다고 커피를 사왔다.
“할머니 이런 거 안 드실걸”이라 말했지만,
동생은 “달달해서 괜찮지 않을까”하며 할머니를 불렀다.
동생은 화이트 모카를 컵에 따라 할머니에게 건넸다.
할머니는 몇 번 싫다 하더니
한입 마시고는 홀짝홀짝 한 잔을 다 마셨다.
“이렇게 맛있는 커피는 처음 먹어보네,
너희가 매일 마시는 게 이거였어?”
할머니는 이제 카페에 가자는 손녀의 말에
더는 싫다고 말하지 않았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연신 “맛있다, 맛있어” 한다.
바닐라라떼, 카페모카, 돌체라떼를 내밀면,
“이거는 좀 덜 달아, 저번에 마신 게 더 맛있네”라며
자신만의 커피 취향을 만들어나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할머니의 커피 취향은
스타벅스의 연유를 한 번 더 추가한 돌체라떼.
하루는 편의점에서 달달한 커피를 잔뜩 사갔더니
할머니는 빨대로 한 번 쪽 빨더니 내려놓으며 말했다.
“에이 이건 못 먹겠다.”
이게 얼마나 맛있는지 아무리 어필해도
공장에서 찍어낸 맛이라며 웃는다.
“너희가 내 입맛 다 버려놨어.”
#2. 쉽게 버릴 수 없는 것
분기별로 대청소를 하는 나는
쓰지 않는 물건들은 추려 거실에 내놓았다.
노인정을 다녀온 할머니가 보더니 기겁을 했다.
“얘가 디나 안 디나 다 버리네.”
청소를 끝마친 뿌듯함은 사라지고,
쓸 만한 걸 추려내는 할머니를 말리기 위해 바빠진다.
“할머니, 아냐. 다 버려야 돼! 다 쓰레기야!”
결국 절반은 고스란히 할머니 방으로,
나머지 절반만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따로 살면서 나는 마음껏 버리는 삶을 살 수 있었지만,
할머니네 집에 갈 때마다
물건들을 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냉장고와 벽 사이에는 비닐봉지들이
서랍에는 각양각색의 펜, 노트가 빼곡하다.
화장실 서랍엔 오래된 수건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할머니 왜 도대체 다 끼고 사는 거야?
안 쓰는 건 버려야지.”
“나는 물건이 귀한 시대에 태어났잖아.
네가 안 쓰겠다고 버리는 것들도 나에겐 귀한 거거든.”
할머니가 좋아하는 자유시간과 체리를 담은 마트 봉지도,
죽을 포장해온 종이봉투마저도,
할머니에게는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할머니의 삶을 생각한다.
버리기 전에 물건들의 쓸모에 대해서 생각하기로 한다.
할머니가 그랬듯.
#3. 기억을 잃지 않으려고
할머니 집에 가면 손바닥만 한 수첩이 돌아다닌다.
종이엔 온통 숫자뿐이다.
치매 예방을 위한 거라고 한다.
할머니는 매달 노인정에서 치매 예방 교육을 받는다.
그때마다 늘 1등을 해서 오는데,
“내가 계양구에서 1등이래”라며 자랑하기 바쁘다.
하루는 구구단을 거꾸로 외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너무 애쓰는 거 아니냐고.
그러자 할머니가 답했다.
기억을 잃어서, 자식도, 손녀도 못 알아보면 안 된다고,
짐이 되는 건 끔찍하게 싫다고.
어제와 오늘을 저장하기 위해서는
오래된 기억을 덜어내기도 해야겠지.
그렇다면 할머니가 최근의 기억을 많이 저장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할머니로가 아닌,
꼭 해야 할 일도, 누군가를 책임져야할 일도 없는
평온한 지금의 순간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곤
지난주, 같이 해물찜을 먹으며 “맛있는데 맵다” 하며
연거푸 물을 마시며 웃었던 그런 순간들이기를.
할머니 집을 나서면 할머니는 문 앞까지 배웅을 나온다.
그걸로도 부족한지, 아파트 복도에 서서 창문 너머
걷고 있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는다.
내 뒷모습을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아서.
그게 나의 할머니라서.
참고 도서 : 『할머니의 좋은 점.』,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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