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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를 합니다

90살 할머니가 스타벅스 커피 처음 마시고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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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보

 

#1. 할머니는 돌체라떼를 좋아해 

 

할머니는 손녀들이 나갈 때마다 어딜 가냐고 물었다.

대부분 “카페 갔다 올게”가 우리의 대답이었다.

그럴 때면 카페는 왜 그렇게 자주 가냐며 궁금해했다.

 

5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러 매일 나간다니.

그뿐인가? 집에 올 때도 사 오는 걸 보면

커피에 중독된 게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루는 동생이 할머니 드린다고 커피를 사왔다.

“할머니 이런 거 안 드실걸”이라 말했지만,

동생은 “달달해서 괜찮지 않을까”하며 할머니를 불렀다.

 

ⓒ 루보

 

동생은 화이트 모카를 컵에 따라 할머니에게 건넸다.

할머니는 몇 번 싫다 하더니

한입 마시고는 홀짝홀짝 한 잔을 다 마셨다.

 

“이렇게 맛있는 커피는 처음 먹어보네,

너희가 매일 마시는 게 이거였어?”

 

할머니는 이제 카페에 가자는 손녀의 말에

더는 싫다고 말하지 않았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연신 “맛있다, 맛있어 한다.

 

바닐라라떼, 카페모카, 돌체라떼를 내밀면,

“이거는 좀 덜 달아, 저번에 마신 게 더 맛있네”라며

자신만의 커피 취향을 만들어나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할머니의 커피 취향은

스타벅스의 연유를 한 번 더 추가한 돌체라떼.

 

하루는 편의점에서 달달한 커피를 잔뜩 사갔더니  

할머니는 빨대로 한 번 쪽 빨더니 내려놓으며 말했다.

 

“에이 이건 못 먹겠다.”

 

이게 얼마나 맛있는지 아무리 어필해도

공장에서 찍어낸 맛이라며 웃는다.

 

“너희가 내 입맛 다 버려놨어.”


 

#2. 쉽게 버릴 수 없는 것

 

분기별로 대청소를 하는 나는

쓰지 않는 물건들은 추려 거실에 내놓았다.

노인정을 다녀온 할머니가 보더니 기겁을 했다.

 

“얘가 디나 안 디나 다 버리네.”

 

ⓒ 루보

 

청소를 끝마친 뿌듯함은 사라지고,

쓸 만한 걸 추려내는 할머니를 말리기 위해 바빠진다.

 

“할머니, 아냐. 다 버려야 돼! 다 쓰레기야!”

 

결국 절반은 고스란히 할머니 방으로,

나머지 절반만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따로 살면서 나는 마음껏 버리는 삶을 살 수 있었지만,

할머니네 집에 갈 때마다

물건들을 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 루보

 

냉장고와 벽 사이에는 비닐봉지들이

서랍에는 각양각색의 펜, 노트가 빼곡하다.

화장실 서랍엔 오래된 수건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할머니 왜 도대체 다 끼고 사는 거야?

안 쓰는 건 버려야지.”

 

“나는 물건이 귀한 시대에 태어났잖아.

네가 안 쓰겠다고 버리는 것들도 나에겐 귀한 거거든.”

 

할머니가 좋아하는 자유시간과 체리를 담은 마트 봉지도,

죽을 포장해온 종이봉투마저도,

할머니에게는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 루보

 

 

내가 겪어보지 못한 할머니의 삶을 생각한다.

버리기 전에 물건들의 쓸모에 대해서 생각하기로 한다.

할머니가 그랬듯.

 


#3. 기억을 잃지 않으려고

 

 

할머니 집에 가면 손바닥만 한 수첩이 돌아다닌다.

종이엔 온통 숫자뿐이다.

치매 예방을 위한 거라고 한다.

 

할머니는 매달 노인정에서 치매 예방 교육을 받는다.

그때마다 늘 1등을 해서 오는데,

“내가 계양구에서 1등이래”라며 자랑하기 바쁘다.

 

하루는 구구단을 거꾸로 외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너무 애쓰는 거 아니냐고.

그러자 할머니가 답했다.

 

기억을 잃어서, 자식도, 손녀도 못 알아보면 안 된다고,

짐이 되는 건 끔찍하게 싫다고.

 

어제와 오늘을 저장하기 위해서는

오래된 기억을 덜어내기도 해야겠지.

그렇다면 할머니가 최근의 기억을 많이 저장했으면 좋겠다.

 

ⓒ 루보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할머니로가 아닌,

꼭 해야 할 일도, 누군가를 책임져야할 일도 없는

평온한 지금의 순간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곤

지난주, 같이 해물찜을 먹으며 “맛있는데 맵다 하며  

연거푸 물을 마시며 웃었던 그런 순간들이기를.

 


 

할머니 집을 나서면 할머니는 문 앞까지 배웅을 나온다.

그걸로도 부족한지, 아파트 복도에 서서 창문 너머

걷고 있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는다.

내 뒷모습을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아서.

그게 나의 할머니라서.

 


참고 도서 : 『할머니의 좋은 점.』,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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