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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를 합니다

요즘 초등학생들 질문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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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su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영민이가 다가와 이런 말을 꺼냈다.

 

“선생님, 눈물이 무슨 맛이게요?

제가 매일 먹어봐서 아는데요, 로션 맛이에요.”

 

영민이는 왜 아침마다 로션 맛 눈물을 먹으면서

학교에 오는 것일까?

 

궁금증이 일었지만 사정을 캐묻기보다는

영민이만의 남다른 표현을 칭찬해줬다.

 

“영민아, 너 완전 시인이다.

네가 한 말 그대로가 한 편의 시야!”

 

그때부터였다. 영민이는 시인이 되고 싶다면서

공책에 뭔가를 써오기 시작했다.

 

너는 왜 못하니?

너는 왜 노력하지 않니?

정곡을 찌르는 엄마의 잔소리

나는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새끼 바다거북처럼

잡아먹힐 위험에 처해 있다.

내 간은 새끼 바다거북처럼 쪼그라져 있다.

 

미술시간이었다.

피카소의 그림 〈우는 여인〉을 감상하며

지영이가 쓴 시를 읽다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짠 라면

 

아빠가 돌아가셨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집에 오니, 엄마가 라면을 끓여주셨다.

라면이 짜다.

 

ⓒ susu 

몇 해 전 암으로 아버지를 보내드린 지영이는

열 세살짜리의 슬픔을라면이 짜다라는

다섯 글자에 담담하게 담아냈다.

     

 ‘그동안 아이들의 마음이 담긴 말을 몰랐구나.’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들의 살아있는 말과 글이

교실 지천에 반짝이고 있었다.

 

ⓒ susu 

노트 한쪽에 그려놓은 그림,

책에 적은 시 한 줄, 툭 던진 말 한마디.

거기엔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 있었다.

 

반짝이다가 사라져버리는 흔적들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것을 붙잡아 작품으로 키워내고 싶었다.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와 직접 그린 그림으로 

각자의 그림책을 만들어 출판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만들어주겠다고 하고 

뭐든 다 써도 된다는 내 말에,

머뭇대던 아이들이 슬슬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 susu 

“뉴스에서 봤는데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안 된대요.  

대학은 왜 가야 하는 거죠?”

 

“실과 시간에 ‘솎아내기’ 배울 때, 솔직히 겁났어요.

경쟁에서 밀라면 나도 저렇게 뽑힐까봐요.”

 

아이들이 꺼낸 이야기들은 마냥 순진무구하지만은 않았다.

아이들의 눈이 향한 곳은 밝고 따뜻한 쪽이 아니라

오히려 그늘진 쪽이었다.

 

‘녀석들, 이렇게 이야깃거리가 풍부했으면서

국어 시간엔 왜 그렇게 식상한 글만 쓴 거니?’

 

그림책 창작 시간에 아이들은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로

다른 결의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 susu 

한 번은, 자기 자신을 사물에 비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래연이가 말했다.

 

“선생님 저는 미역이에요.

제가 미역처럼 이리저리 흐느적거리거든요.”

 

“오호, 그럼 해파리는 어때?

해파리도 흐느적거리잖아?”

 

“음… 해파리는 안돼요. 뿌리가 없잖아요.

전 한번 고집을 부리면 끝까지 가거든요.“

 

래연이는 자기 나름대로 뿌리가 있으면서도

흔들리는 존재로 미역을 찾았던 것이다.

 

그 이야기는 고스란히 그림책의 서사로 연결됐다.

“할머니는 왜 이렇게 흐느적거리시나요?”

“물살을 타고 의지하는 거란다.”

“할머니는 왜 계속 한 곳에만 계세요? 답답하잖아요.”


“뿌리가 깊기 때문이지. 대신 어떤 물살에도 굳건하단다.”

 

기성 출판물과 견주어도 탄탄한 이야기를 가진

이 그림책의 시작은나는 미역이다라는 생각 조각이었다.

아이들 자신의 이야기는 이렇게 힘이 세다.

 

6년간 만든 아이들의 창작 그림책이 200권이 넘는다.

그림책을 살펴보면 아이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무엇에 마음이 머무는지를 알 수 있었다.

 

ⓒ susu 

많은 사람들이 공교육에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사막 한가운데서 모래바람을 맞는 것처럼 아팠다.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는 말했다.

 

“절망적인 상태에 놓였을 때, 분에 넘치는 일을 하기보다는

먼저 내 발아래 유리조각을 주워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너진 믿음을 한번에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여기 이 교실에서 

내 발아래 떨어져 있는 것을 하나씩 주워드는 일이다.

 

ⓒ susu 

교실을 바닥에 조각조각 파편으로 떨어진

아이들의 말을 하나씩 주워 모으는 것,  

나는 그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기로 했다.

 


참고 도서 : 그림책 한 권의 힘』, 이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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