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뇌에 있는 종양은 낭종이다.
엄마는 수술을 받을 만큼
큰 혹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엄마가 입원하는 날,
엄마는 병원 로비를 둘러보며 말했다.
“오… 여기 공항 같네?”
“곧 수속 받으셔야죠. 여권은 잘 챙기셨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농담에 쉽게 가담했다.
수술 동의서를 받을 때
레지던트는 수술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했다.
뇌하수체를 다루는 수술이어서 시신경을 건드릴 경우 실명할 수도 있음.
뇌수술 도중 다른 부위를 건드려 즉사할 수도 있음.
여타의 이유로 뇌사할 수도 있음.
씩씩했던 엄마는 무서운 말을 듣고 덜컥 겁이 났고
이 병을 안고 살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수술 시간은 오전 여덟 시 반이었다.
병실 문을 여니 엄마가 삐삐 머리를 하고 있었다.
수술 받을 때 머리카락이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엄마는 정말 소녀가 된 것 같았다.
엄마는 침대에 눕힌 채 천천히 옮겨졌다.
“좀 있다 봅시다!” 하고 나는 말했다.
엄마는 씩씩한 미소를 지으며 수술실 문 뒤로 사라졌다.
간병인에게 가장 힘든 구간은
환자가 수술을 받는 시간과
수술 후 깨어날 때까지의 시간이다.
회복실로 들어갔다는 문자를 받고
한 시간이 지나도록 엄마는 오지 않았다.
예정 시간보다 두 시간이 지났을 때, 엄마가 왔다.
각본에 따라 “편안한 비행 되셨습니까?
행복한 여행 에어라인, 기장 문보영이었습니다.” 하려 했는데,
엄마를 보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인간에게는 여러 종류의 눈물이 있다.
손가락으로 닦는 눈물, 손등으로 훔치는 눈물,
그리고 팔 전체를 이용해서 닦는 눈물.
엄마는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게 엄마가 살아있다는 증거 같았기 때문에
엄마가 계속 인상을 쓰고 있었으면 했다.
생수를 거즈에 축여 엄마의 입에 물려주었다.
아, 하고 말하면 엄마가 조그맣게 입을 벌렸다.
나는 어미 새가 된 것 같았다.
간병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소독을 하면서 쓴 증류수, 약봉지, 죽 그릇, 물통
계속 계속 버릴 게 생겼다.
엄마가 살아 있어서, 엄마는 필요한 게 많았다.
살아 있어서, 나는 쓰레기가 자꾸 나오는 게 좋았다.
누군가 활발히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그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쓰레기는 엄마의 오줌이다.
오줌량을 체크해야 해서 플라스틱 통에 소변을 보고
그걸 플라스틱 컵에 옮겨 담아야 했다.
수술 전에 봤던 타로점이 떠올랐다.
내가 고른 카드 중에 컵이 많은 카드 한 장이 있었다.
컵은 많은 생각, 잡념과 걱정을 의미한다고 했다.
타로의 컵은 비유로서의 컵이 아니라
엄마의 오줌 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엄마의 오줌은 내가 버려본 쓰레기 중에
가장 사랑에 가까운 쓰레기라는 사실도.
엄마가 자는 동안 엄마에 관해 끊임없이 썼다.
나를 벌주는 맛으로 썼다.
한 번도 엄마를 제대로 관찰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평생 나의 공포와 나의 꿈과
나의 불행을 관찰한 사람이다.
내가 기쁘든 슬프든 나의 삶을 기꺼이 관찰했다.
이제는 엄마의 슬픔과 인생,
엄마가 품고 있을 공포와 이야기를 관찰하고 싶었다.
“야, 뭘 그렇게 쳐다봐? 네 할 거해.”
엄마를 쳐다보는 나를 쳐다보며 엄마가 말했다.
갚아야 할 관찰의 빚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속으로 말했다.
참고 도서: 문보영,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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